조선 사람의 세계여행
- 새로운 세계를 향한 조선 사람들의 여정과 그 기록『조선 사람의 ...
1. 자신감과 현실감으로 빚어낸 15세기 세계지도 <혼일 강리역대국도지도> <해동제국기>
<혼일 강리역대국도지도>는 태종2년 1402년에 간행된 것으로 일본 류코쿠대학등에 소장되어 있다.
1.6M*1.5M로 최고지도다.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중국의 <성교광피도><혼일강리도>를 저본으로 조선과 일본의 지도를 덧붙여 만들었다고 했다.
지도를 보고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 또한 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
두 분(김사형, 이우)이 이 지도에 정성을 다한 데서도 그 규모나 국량이 방대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도를 그리는 사실적 역량 실력이 미흡하지만 조선을 지나치게 크게 그 그린 것은 자부심의 작용이며 일본을 크게 줄인 것은 조선인의 일본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해동제국기>는 1471년 성종 2년에 신숙주가 왕명을 받아 작업한 것으로 1443년 세종 25년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유구국에 관한 지도 역사 풍습을 정리한 것이다.
천황 막부의 역사 풍속이 기술되어 있다.
서문에는 일본을 오랑캐로 이해하고 나라밖 오랑캐를 잘 다룰 방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만들었다고 기술했다.
2.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표류한 조선선비 최부 <표해록>으로 본 중국강남견문
1488년 제주를 출발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자 제주에서 나주로 향하던 중 표류하면서 쓴 기록이다.
중국에서 배워온 수차 제작법을 조선에 도입하여 활용하려고 했다.
3. 착잡함과 우월함의 교차 열두 번의 사행길 조선통신사의 일본여행
조선시대 사람들은 통신사행의 임무가 맡겨지는 것을 꺼려했다.
이는 해로인 데가 길이 안전하지 못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조선총신 사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 조선왕실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로 세종 때부터 일본에 사신을 보냈지만 임란 이후 통신이라는 명칭을 쓰는 게 부당하다며 회답경 또는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사신파견을 했다(1607.1617.1624)
쇄환이라는 이름을 쓸 것은 임안당시 잡혀간 포로의 쇄환이 주요한 임무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636(인조 14년) 이후 다시 통신사 명칭을 회복하소 1607년 (선조 40년) 이후 통신사 파견이 정례적으로 쇄신사라는 이름으로 3회 1811(순조 1)까지 9차례 총 12차례로 총인원 350-500명이 5-10개 월간 다녀갔다.
일본에서는 조선통신사의 글을 받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했고 일본을 다녀간 조선인들은 일본의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18세기 일본이 출판문화 판화제작에 충격을 받았고 화려한 건축 사치스러운 복색 휘황찬란한 야경, 선박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우월성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1차 사행에 다녀온 원중기가 통신사행에 다섯 가지 이익과 세 가지 폐단을 지적했다.
5가지 이익
-외교적 수행을 잘하면 변경이 편안해진다.
-일본의 지세와 백성의 풍속을 살피면 그들을 인도하거나 제압할 수 있다.
-일본 조정과 왕래하며 대마도의 폐해가 줄어들 수 있다.
-일본을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3가지 폐단
-사행인원이 너무 많다
-역관의 권한이 너무 중하여 통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교역하는 물품이 너무 번잡하다.
4. 예로써 섬긴 나라 여자로 섬긴 나라 공녀로 본 여성의 해외 경험
공녀는 중국에 진상된 여자로 주공무역의 일환으로 공물로 취급되었다.
5세기 공녀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고구려와 신라에서 중국의 북위까지 여자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본격적인 것은 원의 간섭으로 시작된 고려후기부터이고 조선은 명 청에 공녀를 보냈다.
127년 고려원종 15년 귀순 낭송 군사들이 처를 얻어준다는 구실로 140명을 요구하면서 과부와 역적의 처 승려의 딸이 보내졌고 고려충렬왕 때 1275-1354 80년간 88차례 50-170명이 보내졌다.
태종-세종까지는 20년간 7차례 114명이 보내졌으며 공식적인 공녀 외에도 간접적인 사적 공녀가 많았다.
11-18세의 여성들이 보내졌다.
고려시대에는 결혼도감으로 과부 처녀 추고 별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진헌식, 혼례도감낭청이 있었다.
이때는 전국 혼인 금지령을 내려 공녀를 선발하고 공녀가 가족에게는 관직과 재물을 주며 위로했다.
5. 북경여행, 조선 실학의 숨은 추동력
홍대용의 중국기행과 서양과학의 전래
북경에 파견단을 조선사절 연행사라 불렀다.
조선후기 연행사의 왕래는 나라 바깥 정보의 수집 통로이자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북경 선진 문물을 경험하고 수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서양과학을 흡수하는 거의 하나밖에 없는 통로였다.
조선사신들은 북경에서 한 문으로 번역된 서양과학서적을 구입하여 국내로 들여와 서양과학에 대한 지식을 넓혀갔다.
연행사이의 정식인원 외에도 자제군관들이 가게 되는데 이들은 특별히 맡은 바 임무가 없으므로 자유로이 여행하며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
홍대용의 담헌연기 한문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견문을 주로 기록하여 사대부 학자들을 위한 것과 을병연생론 한글본은 날짜별 일기 형식으로 개인적인 신변 기록이 많아 여성과 서민들을 위한 여행기가 있다.
이 책에는 중국 선비들과 나눈 대화내용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어 홍대용 사상 탐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정기적인 통신사의 경우는 음력 11월 초 서울에서 북경까지 2개 워 총 6개월이 걸린 일정이었다
연행가의 임무는 신년 축하를 위해 황제 생일 축하하는 이레와 중국 청나라 사정을 정탐 보고하는 것 중국에서 출간된 서적, 최신 서적등을 구입하여 새로운 학술과 문물 수입의 중요한 수단이다.
18세기초 천나라 고증학의 기풍을 타고 수학과 천문학이 고대경전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조선에서도 이런 인식의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홍대용의 <주해수용>은 실용 산술, 방정식 서양의 삼각함수 천문 기구 제작법등 폭넓게 다룬 수학책이다.
6. 물건 팔러 떠났다 풍속까지 섭렵한 고려 상인의 중국 여행기 외국어 학습서 <노걸대>로 떠나는 여행
<노걸대>는 한어 학습서로 중국 이 씨 (중국인의 애칭) 중국통이라는 뜻의 노걸대가 중국으로 말, 모시, 인삼 등을 팔러 간 고려 상인이 여행과 교역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을 회화체로 꾸민 책이다.
중국의 풍물과 생활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회화체로 꾸민 <박통사>와 함께 고려말기 당시의 한어를 학습할 목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고려 상인이 도중에 만난 중국 상인과 함께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다시 고려에 갖다 팔 물건을 산후 귀구ㅠㄱ길에 오르기까지의 106개 상황을 설정해 그에 맞는 대화를 꾸며 전개한 내용이다.
노걸대는 일상 회화를 주로 한 초기 단계 회화교재이며
박통사는 다채롭고 수준 높은 어휘를 담은 고급 단계 회화 교재이다.
노걸대는 언어지식뿐만 아니라 여행자나 상인 역관등 여러 목적으로 중국아를 학습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식 등을 제공했다.
예를 들면 중국 여관에 드는 방법 중국에서의 상거래관행,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중국인의 기호, 당시 물가등에 대한 정보 등 중국교역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7. 캐나다와 뉴욕까지 진출한 조선의 러시아 사절단 민영환 일행의 세계여행
민영환의 해천주법김득련의 환구일록이 있다
8. 고비사막을 뚫고 모스크바를 향해 떠난 독립의 열정
일제강점기 목숨 걸고 떠난 여운형의 여행길
9. 조선이 만든 첫 신문 그 속에 비친 첨단의 세계 박문국과 한성순보 그리고 경제 제도
한성순보는 최초의 근대신문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 중의 하나였다.
대부분의 독자는 공무원으로 관보의 성격을 띤다.
1883년 10월 창간하여 1884년 12월 갑신정변으로 발행중단되었다가 1886년 1월 한성주보로 재 창간하했다가 1888년 7월 폐간되었다.
10. 조선의 바깥에서 조선여성을 바라보다. 나혜석의 구미만유
최초로 구미여행을 한 여성이었다.
1927년 6월 22-1929년 3월 국시까지의 글이다.
11. 보편세계를 꿈꾼 지식인이 본 세계의 대격변 연희전문교수 이순탁의 세게 일주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로 분할된 새계의 현상 그 현상 이면에 가로놓인 각국의 사회와 문화의 이면을 알려주었다.,
개인적인 감상을 절제하면서 당대의 세계정세와 각국의 상황이라는 양대축을 세밀히 보고 이 두 축 사이의 식민지 조선이라는 조국이 처한 현실을 대입해 바라보았다.
12. 만주의 광활한 대지에서 피언난 문학적 상상력 식민지 시기 조선 문인들의 만주기행
일제 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은 너무나도 많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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