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
한강
문학동네
1998.08.19 초판 1쇄
2005.01.25 2판 1쇄
439
책 속 문장
저 푸른빛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둠의 속으로, 태어난 곳으로, 태어나기 전의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일까. 10쪽
그 침묵, 무수한 말과 형상들로 가득 찬 듯한 침묵 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41쪽
그때 그는 자신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라라는 것을 예감하였다. 43쪽
굳이 말로 써야 하는 게 구차하고 귀찮아요.
말로 하는 것이 구차하다는 공격적인 변명과 영혼이 갈취당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57쪽
명윤이 어두운 것을 싫어하는 것은 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는 자신이 안간힘을 다해 빠져나온, 혹은 빠져나오려 하는 있는 그 구덩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61쪽
무슨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그렇게 많은 말을 지껄여댄 것일까 61쪽
자신의 찌푸려진 내면에 벗어나 갑자기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사람의 얼굴은 저렇게 투명해지는 모양이었다.
75쪽
마치 의선은 나의 사진들을 불태웠듯이, 내 내부의 무엇인가를 불태워 그 자리에 빈 공간을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76쪽
내가 훔치는 것은 피사체만이 아니었다. 그 찰나의 시간과 빛이리고 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 짧은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 긴 침묵이 되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게 되는 순간의 매혹에 나는 빠져들었다. 78쪽
아니면 무엇인가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는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아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던 것일까. 97쪽
명윤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라는 따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단지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고통이나 병이나 죽음을 알아낼 수 있는 힘조차 잃어버리고 말만큼 무력한 것이 사랑이었다. 111쪽
인영은 세계의 논리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성공이나 치부에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좌절고 없었다, 진정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인영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귀어둔다는 식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바로 그 담백함 때문에 인영에게는 적이 없었다. 123쪽
그녀와 세계 사이에 놓인 간격, 거의 감정의 부재라고 불러도 될만한 깊은 강 덕분에 그녀는 무엇인가를 기대하지도, 상처입지도 않고, 감정적인 책임을 느끼지도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25쪽
'잘 가라' 인사하고 나면, 언제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냐는 듯이 뒤돌아서서,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뚜벅뚜벅 앞만 보고 걸어간다는 것이었다. 그 뒷모습이 하도 냉랭하여 헤어지고 나면 가슴이 허전해진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151쪽
그의 얼굴에서 내가 읽은 것은 환멸이라기보다는 견고한 외로움이었다. 187쪽
그 갱도의 끝에서 보았던 햇빛을 장은 잊지 못한다. 비로소 나쁜 꿈이 끝났다는 것을, 장에게 삶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날이 아니라 벅찬 감각으로 실감하게 해 준 빛이었다, 그러니 햇빛 가운데로 막상 몸을 내밀었을 때 장은 쏘는 듯한 그 빛에 눈을 감았으며, 기쁨 대신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196쪽
결코 엄살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상대의 엄살 역시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243쪽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자랐고, 바로 그 어둠으로 인하여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그 신령한 푸른빛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나는 투정하거나 심심함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251쪽
다만 눈빛의 변화만으로 사람이 얼마나 달라 보일 수 있는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255쪽
땅속에서 돌을 캔다는 건.... 그 돌들하고 목숨을 조금씩 바꾸는 거라고 했어. 281쪽
돌아가자고 하면 네가 견디지를 못 할 것 같아서 참은 거야..... 참는 게 뭔지 알고 있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참아본 적 있어? 288쪽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면 이 사람이 튜브를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쉽게 사람을 환멸 하게 만드는 생각이었다, 결코 타린에게 튜브를 던지지 못할 사람도 있었고, 던져야 할지 말아야 하지의 경계에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던져주고 말 사람도 있었다. 튜브를 거머쥔 꿈속의 내 모습이 스스로를 환멸하고 증오하게 만들어다. 328쪽
나는 혼자 남았으며, 혼자 남은 사람으로서 강하게 생활해 왔다. 튜브를 누군가에게 던져주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않았으므로 서른을 넘기도록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누구도 결정적으로 믿지 않았으며,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329쪽
깊음 물속에 가라앉아 먼 수면 저편의 세상을 보듯이 나는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았다. 혼자임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떠한 가까운 관계도 원치 않았다. 330쪽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 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몇 명의 남자와 연애를 해보려 한 적이 있지만, 내가 허물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그때마다 뒤로 물러서곤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만 외로웠던 것뿐이었다. 335쪽
어떤 말도 나한텐 남아 있지 않을 거야. 그때에야 내 삶은 완전해질 거야. 완전하게 비어버릴 거야. 347쪽
완전한 형태로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일기는 최대한 간결한 서너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했다. 또한 문장 안에 그날 그녀가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두려운 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없습니다,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야. 386쪽
견디는 법을 나한테 가르쳐준 사람이오. 432쪽
검은 사슴은 읽다 보니 한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녀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듯한 소설이다.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다가 조곤 조곤 나지막이 내뱉는 그녀의 막들
그리고 그녀의 톤
가장 많이 닮은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다소 복잡하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한강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지 않다 보면 그 인물이 되어보자 않으면 소설을 따라가기 힘들다.
의선이라는 여자가 알몸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으로 강렬하게 등장한다.
그녀가 사라지고 그녀를 찾으려는 인영과 명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장종욱 씨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가지고 있는 상처로 한없이 침참해 들어간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그건 자신의 상처였다.
그 상처를 검은 사슴이라는 짐승으로 상징화한다.
검은색 암울한 자신들의 상처
그러나 짐승의 눈이 상징하는 처절한 삶의 고통을 마주하면서 살아갈 힘을 찾는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상처가 커서 두렵다.
그 상처의 크기가 크건 작건 그들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다.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탄광
그리고 민영언니가 죽은 바다
두 공간은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죽어나가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검은 사슴의 모습으로.
그들이 의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의선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내면의 몸부림이 있다.
상처 고통을 조우하면서 마주하게 될 삶의 의지다.
배 사고, 탄광사고, 기차사고
사고에 삶과 죽음이 있다.
죽음 너머 삶의 현장
그 현장에서 살아있음이 죄스러움을 넘어
그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있음이 좋다고 한다.
이제는 살 수 있다는 삶의 표현이다.
-하나 남은 튜브를 던져줄 수 있을까?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
-사진을 찍는 행위
인영의 사진, 장종욱씨의 사진, 나의 사진
-명윤의 삶의 방식, 인영, 장종욱 씨, 의선 인물 분석
-나에게 외로움이란?
-검은 사슴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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