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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철도원 삼대-황석영

by 까만여우 2025. 3. 8.
728x90

철도원  삼대
황석영
620쪽
창비
2020.06.01
 


이것은 유년기의 추억이 깃든 내 고향의 이야기이며 동시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 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고 한다.
-----620쪽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말에서 보듯 한반도 백 년의 역사를 꿰뚫는 소설이다
 
1대 : 이백만 (증조부), 주안댁 (증조모) , 이막음(증고모)
2대 : 이일철(할아버지), 신금(할머니) / 이이철(작은할아버지), 한여옥(작은할머니)
3대 : 이지산(아버지), 윤복례(어머니)
4대 : 이진오 (나)
 
이 작품은 철도원 가족을 통해 일제강점기부 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 나게 다루고, 사료와 옛이야기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해 냈다. 
이 작품은 원고지 2천 매가 넘는 압도적인 분량((620쪽) 임에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실감을 주는 캐릭터로 황석영의 저력과 장편소설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아파트 십육 층높이의 발전 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이진오는 페트병 다섯 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주고 그들에게 말을 걸며 굴뚝 위의 시간을 견딘다. 
매섭게 춥고 긴긴밤, 증조할머니 '주안댁', 할머니 '신금이', 어릴 적 동무 '깍새', 금속노조 노동자 친구'진기', 크레인 농성을 버텨낸 노동자 '영숙'을 불러내는 동안 진오는 과거부터 지 금까지 이어져 자신에게 전해진 삶의 의미를 곱씹는다.
 


 
책 속 문장
 
먼지보다 더 작아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발견할 수 도 없는 이런 미물도 열심히 살아간다고 그는 생각했다.

32쪽

 
그렇듯 늘 굶주려하는 병은 어디서 연유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백만이 살갑게 아내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외로움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나중에 외동누이 막음이가 말해주었다.

44쪽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갈린 듯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고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202쪽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 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

207쪽

 
살 수 있다면 살아남아야 한다. 그까짓 종이쪽지가  무슨 소용이야. 욕스러운 건 견뎌내야지. 몸이 부서지지 않게 살아남아있다가 다시 싸울 수 있잖아? 

388쪽

 

굴뚝 위에서는 언제나 차디찬 강바람이 몰아 쳐왔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지상에서도 그랬듯 이 꽃샘추위는 얄밉세 버티며 물러가지 않았다. 봄 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옛말은 계절 이야기가 아 니라 자기네 같은 노동자의 현재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405쪽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

410쪽

 
신금이는 해방되고 나서 남편이 급속하게 변해가 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온건하고 단정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으나 적에 대한 증오와 결의는 단호했다. 그녀는 남편이 차츰 집안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아우 이철의 죽음이 가슴의 못으로 깊이 박혀 있었던 때문인 듯했다. 술에 취해 돌아온 어느 날 일철은 아내 신금이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자기는 충실한 일 제의 신민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 철도 직무를 수행했고, 아우의 항일운동을 소극적으로 돕는 시늉이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고 자책하였다. 그는 이제 해방된 나라에서 이전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작심한 것 같았다. 아우 이철이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는 쪽의 편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529쪽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하지만.

564쪽


철도라는 소재의 의미
파친코라는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놓치고 있던 재일교포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난 한 번도 그들의 삶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방인으로 살았을 것이라 생각에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파친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철도도 마찬가지다.
철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가 자행한 수탈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철도로 운송되었던 물자, 수탈의 현장에서 바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현장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치열해했을 것이다.
부당함과 착취의 현장
그러나 그런 노동현장에서 일철은 일찍이 똑똑한 두뇌로 기관사가 된다.
그러나 그의 동생 이철은 부당함에 자신의 길을 간다.
노동자의 편에 서서 삶의 정당함을 요구하는 길을 가는 이철
가족들은 그런 그를 만류하지 않는다.
그의 길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이철의 죽음은 일철이 그 길을 가도록 만든다.
이철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앍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의 수탈과 노동자의 착취를
그걸 철도라는 소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낸다. 
 
주안댁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주안댁은 가족들에게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주안댁은 자신의 몸을 이승에 나타나면서 그들의 삼을 지켜준다.
우리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음을 
그들의 과거가 지금의 현재를 만들고 있음을 주안댁으로 하여금 일깨우게 한다.
 
여성의 힘
이 소설에서는 당당한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과거 소설에 비해 적극적이고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면서 수동적이지 않은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취하는 여성들이 나온다.
그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막음이 고모가 그러하고 한여옥 그리고 신금이 까지
어느 여성 하나 당당하지 않은 이가 없다.
 

무슨 일이 있을 때 해 먹는 떡
떡이 자주 등장한다.
혼자 먹을 수 없는 떡은 나눔의 징표이고 기쁨의 일이고 함께하는 기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매개다.
 
페트병 다섯 개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
우리는 삶을 살면서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지는 상관없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새기며 그들의 삶이 이 현장에 있다.
나는 그들의 피를 가지고 있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항상 함께 한다.
 
어떻게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투쟁하게 되었는가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투쟁의 길을 걸어가도록 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인물 하나하나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았고 제대로 같이 살아보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문을 당하고 그것을 이겨내고 또는 그 고문에 조직원을 발설하더라고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그들은 또다시 투쟁을 한다.
그들이 자신의 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독서회를 하고 노동 운동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그들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느려도 너무 느린
우리의 역사가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탓에 우리는 아직도 그 고통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그때보다 더 나아지기는 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과거를 현재를 
그래야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황석영의 소설에 대하여

황석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장길산의 작품의 위대성
오래된 정원에서 만난 그의 유려하고 섬세한 글
황석영의 문제의식이 드러난 그이 작품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문체가 전보다 내가 생각하기에 건조해졌다는 거다.
타고난 입담에 유려한 문체가 맛깔스러웠는데 건조한 문체가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그의 입담은 여전하다.
이 작품에 과거에 편중되면서 현재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는 부분은 내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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