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 시대에 살았던 고뇌하는 젊음이
가슴이 먹먹했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물결
일제강점기는 공동의 적이 있었다.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일본이 적이었고 해방이 목표였던 시절
그때는 하나였다.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해방은
많은 문제를 낳으면서
좌 우파의 대립이 되고
그 안에 많은 젊음이 희생되었다.
적이 없어졌다.
할 일은 많았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적이 민족 간의 대립이 되고
지리산은 실록소설이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고
기록에 의거해서 글이 쓰여졌다.
그 때문에 살아있는 얘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태백산맥은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를 각각 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지킨다
어떤 면에서는 좌파로서의 회의도 없고
우파로서의 회의도 없이 대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은 좀 다르다.
우파의 이야기는 없다
대신에 좌파로서의 회의와
이상주의자로서의 회의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이 존재한다.
난 박태영이라는 인물에 주목했다.
이규와 박태영은 친구이면서 동지.
그러나 둘의 모습은 다르다.
이규는 이상만이 존재하고 제도 안에 순응하는 실천력이 없는 반면에
박태영은 반제도적이며 실천력이 있다.
그러나 그 실천력이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회의하는 이상론자 허망한 정열과 함께 이상일 따름이다.
이규
그는 어쩌면 도망자 이기도 하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 멀찍이 있으면서
관망하고
그러나 그들이 있었음에 우리나라가 또 다른 발판이 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그 시대의 우리나라는
좀 더 다양하고 폭넓고
그리고 깊이 있는 사상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을 터.
박태영의 고뇌가 그 시대 젊은이의 또 다른 고뇌이지 않을까
그 시대 물론 사상성이 투철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또 다른 측면의 박태영처럼 고뇌하는 젊은이도 있었으리라는
인물의 다양성을 생각했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민족주의자의 고뇌로
박태영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죽음으로 내몰려져야 하는 그것이.....
이병주작가가 펴고자 하는 주제에는 수긍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시대 그런 젊은이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고뇌하는 젊은이가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이 그리 허망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의 열정이 그들의 이상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도
전해지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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