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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탈리아 여행 1일차-폼페이 소렌토 나폴리 카프리섬

by 까만여우 201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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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찬 이탈리아 여행이다.

고대로마제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폼페이

2000년전의 일상이 담긴 폼페이

로마 제국이 얼마나 강건했는지 폼페이까지 뻣어있는 로마가도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폼페이의 도시는 제정로마 시대 귀족들이 휴양도시로 공중목욕탕, 원형극장, 술집, 윤락가등이 갖취진

쾌락의 도시이자 휴양의 도시다. 

또한 인근의 바다와 접해 있어 당시 농업,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따뜻한 환경으로 귀족들의 피서, 피한지로서도 인시가 높았다.

한때 인구가 2만명을 달하던 폼페이가 AD79년 8월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다.

오랫동안 화산재에 묻혀졌던 폼페이가 1748년 우연히 발견도면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폼페이의 유적을 통해 제정 로마시대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문화등을 알 수 있다.

 

 

회랑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연습장이었다고 한다  회랑 안쪽에는 검투사들이 방이 있다.

벽돌을 구어 만든 집등리 보인다.

 

 

 

원형 경기장의 모습이다.

로마 시대에는 원형 또는 반원형의 경기장이 있으며 무대 중심에서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멀리 까지 퍼져 나가는 걸 알 수 있다.

길에 깔린 대리석이다 각양 각색의 대리석을 깔았으며 가끔 보이는 흰색은 야광으로 밤에 잘 볼 수 있도록 한다.

 

 

로마가도의 모습이다.

이 가도는 중앙에는 마차가 다니는 길이고 양옆으로는 인도가 있고 교차로등의 지점에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는 비가 올때 길을 걷너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길 곳곳에는 말을 묶어두기 위한 홈들이 돌에 파여있다.

로마 시대 마차가 얼마나 많이 달렸으면 이렇게 홈이 파였을까

카이사르는 통치시에 로마 시내에 마차를 끌로 들어오는 걸 막았었다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좁은 도로에 수많은 마차들이 오고 가니 시끄러워 밤에는 통행을 금지 했다고 했는데

그말이 이 가도를 보니 실감이 났다.

 

 

폼페이의 시만들이 사용하던 화덕이다 .

이곳에서 밥을 해먹고 여기에 요리를 해서  팔기도 했다.

물이 상대적으로 풍부했던 로마는 상수도시설을 만들었다.

폼페이도 마찬가지다

물을 상수도관을 이용해서 각각의 집에서 수도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귀족들은 비교적 높은 곳에 살면서 집에 상수도가 들어왔지만 하층민은 공용의 식수를 상수도를 통해 사룡했다고 한다.

위 사진은 상수도 배관과 핖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상수도관이 납으로만들어졌다는 게 애석할 따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납중독에 걸렸을까.

 

 

폼페이에 배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사람도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렸다.

옷모양 신발 모양 그대로

임산부도 있었고 신발도 채 신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 처참한 상황을 화석을 통해 알 수 있다.

한 도시를 앗아간 화산 폭발

                                                               폼페이의 파란하늘

 

휴양지인 카프리섬을 가기위해 쏘렌토로 갔다

배를 타고 들어간 카프리섬

꼭대기위에 올라가서 본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카프리섬의 전경이다

카프리섬은 다이애나 황태자 부부의 신혼여행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박시성도 여기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모든 개발이 제한 되어 있는 이섬은 자동차도 전기로 다니는 미니버스가 있다.

과거 이곳은 지형이 가파른 산악지대로 계단을 이용해 마을 낄 소통을 했다고 하는데

가파른 지형과 계단에 과거 이곳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날씨가 바람이 불어 관광하기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여름이곳은 휴양지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카프리섬을 둘러보고 우리는 나폴리로 나왔다.

나폴리 3대 미항이라 일컬어지는 곳

그러나 미항이라는 것도 과거의 옛말에 지나지 않는나는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