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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예술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by 까만여우 201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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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저자
김영숙 지음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 2007-07-11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루브르와 오르세에서 만나는 서양회화의 정수 루브르와 오르세의 ...

 

 

 

 

 

1. 루브르의 명화산책

루브르는 13세가 필리프 2세가 군사적 목적으로 세운 성 루파라에서 시작한다.

그 후 프랑수아 1세의 명을 받아 피에르레스코가 기존이 성을 완전히 허물고 르네상스풍 건물로 개축했다.

19세기 나폴레옹 시절 지금과 같은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었고 다시 왕궁으로 부활시켰다.

박물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은 루이 15세 시절이다

왕의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시작되었다

1793년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중앙예술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장했다가

나폴레옹 집권 시 수많은 약탈품을 전시하기 위해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루브르는 현재 30만 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나폴레옹 홀이라는 피라미드 안에 들어서면

드농관 2층이 나오고 이어 리슐리외관 쉴리관으로 관람하면 된다.

 

드농관 2층은  주로 초기 르네상스부터 18세기 무렵의 베네치아 회화까지다.

조토의 스승 치마부에를 중세의 끝으로 조토부터를 르네상스가 시작으로 구분 짓는다.

원근법의 개발은 신의 시점이 아니라 인간의 즉 화가의 시점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비스듬하게 있는 물체는 거리감이 보인다 이것을 단축법이라고 표현한다.

성서의 아름다움을 세속의 아름다움으로 변환하고

고대의 초상화가 황제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리고 중세에는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군주 성직자 귀족, 신흥부자등으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모나리자로 대표되는 스푸마토 기법, 선원근법 공기원근법이 자리를 잡아간다.

 

바로크 미술은 17세기 미술로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역동성이 강조된 남성미 위주의 그림이다.

카라바조이 그림이 대표적이다

베두타란 18세기 베네치아에서 유행한 그림으로 베네치아 일리기용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풍경을 오차 없이 사실적으로 그리는 18세기 이 베네치아 풍경화라보면 된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로코코 미술이 유행하는데 섬세하고 몽환적이며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의 여성미 밝은 색조와 경쾌한 움직임이 보이는 그림이다.

로코코미술은 루이 14세 사망뒤 어린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르고 오를레앙 대공의 섭정이 시작되는 때부터다.

고압적인 절대왕정에서 벗어난 귀족들 사이에 향락적인 풍조가 만연하면서 생긴 심리적 현상이다

장식적이고 작은 규모의 아지자기한 회화가 주를 이룬다.

 

스페인 회화는 주로 드농관 26-32실이다

엘그레코의 작품이 있는 데 엘그레코의 특징은 위아래로 길게 당겨놓은 것 같은 길쭉한 인체표현이 특징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푼 귀족들의 모습이나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그림이 많은 반면 분노나 아픔보다는 따사롭고 인간적인 정이 표현되는 그림들이다.

벨라스케스릐 그림이 있는데 마르가리타공주가 있다

보통왕실의 초상화가 의상이나 장신구 등으로 인물의 권위나 위엄을 표현하는데

벨리스케스는 사실적이고 근엄한 분위기로 각광을 받았다.

진실에 호소하는 사실성 인물들의 기품 있는 자세 섬세한 심리묘사와 거친 붓자국이 특징이다.

 

북유럽그림-리슐리외관 3층

플랑드르 회화로 네덜란드 회화 독일화화가 주를 이룬다.

네 댈란 드는 북 그 홀란트지잡의 신교권으로 스페인에게 독립한 지역이고 남부이 플랑드르지방은 스페인의 속국으로 벨기에로 재편성된다.

사물의 다채로운 표면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관찰하여 표현한다.

이 지역은 종교화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근대 의미의 자본부의가 발달하면서

후원자의 주문을 받은 그림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직접 내다 파는 그림으로 작은 규모의 그림이 제작되었다.

이에 화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그리고 에술성을 발휘하게 되고 화상이라는 직업이 생겨난다.

그림은 장르화 풍경화 정물화가 발달하고 신흥부르주아의 초상화 출판물 삽화등이 발달한다.

그림은 대중을 교육하는데 공헌해야 한다는 다비드

예술은 더 이상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교훈적안 옛날이야기나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에 있는 폭력성을 고발하는 수단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제리코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2. 오르세

인상주의 작품을 기준으로 그 직전과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전까지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곳을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면서 현재 미래를 설계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1939년 폐쇄된 오르세역을 1984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1850년부터 1914년까지의 예술작품아 주를 이룬다

원칙적으로 1870년 이전 태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

대부분이 자국 출신이고 외국인들은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의 작품들이다.

제1회 인상주의 전시화가 열린 1874년 기점으로 1층에는 그 이전의 작품

3층에는 1834년 이후 분격적인 인상주의 화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샬롱전

1667년 루이 14 세 시절 설립된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앙리 루브르의 아폴론 샬롱에서 전시하면서 사용된 이름이다.

18세기말부터 국가가 주관하는 심사를 통과한 예술인들에게 전시할 기회를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던 샬롱전은 19세기에도 거의 모든 화가들에게 직업화가로서의 위치를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알리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아카데미 화풍을 철저히 견지하던 샬롱전은 화가들의 불평불만을 받게 되고

이에 1863년 나폴레옹 3 새는 심사에 탈락한 화가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낙선전을 개최한다.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그 위세가 꺾인다.

쿠르베는 사실주의 그림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 그 자체만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인상주의에 영향을 끼 찬다.

밀레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는 프랑수아 1세가 건축한 퐁텐블로성이 있는 프랑스 산림지역으로

19세기 콜레라와 산업발전으로 매캐한 연기, 도시의 각박함을 피하기 위해 화가들이 모여들면서

풍경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자연을 보는 눈의 변화를 추구한다.

인상주의 화가로 모네 마네 들라크루아 드가 작품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상주가 이후 점묘법 등의 신인상주의가 등장한다.

쇠라는 불규칙한 붓터치를 질서 있게 적용하고 사라진 형태들을 점으로 이루어서 선으로 부활시켰다.

색의 구성을 치밀하게 함으로 차가움이 느껴진다.

세잔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림으로 자연을 원추 원통 구의 형태로 보고 시점을 통일하지 않는다.

이 시점의 파괴는 피카소에게 영향을 준다.

 

목차

1 루브르명화산책

1) 초기르네상스:조토, 우첼로 , 만테냐, 보티첼리, 피사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2) 전성기 르네상스: 라파엘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3) 베네치아 미술과 후기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 티치아노, 로토, 틴토레토, 베로네세, 브론치노, 폰토르ㅗ, 로소, 아르침볼도

4) 아틸리아바로크: 카라바조, 카라치, 카날레토.

5) 스페인화화:엘그레코, 무리요, 수리비란, 벨라스케스

6) 북유럽회화: 에이크, 웨이덴, 멩링, 브뢰헬, 뒤러, 크라나 호, 홀바인, 루벤스, 램브란트

7) 프랑스회화:아비뇽 파와 장 푸케, 클루에와 퐁텐블로 파, 푸생, 로랭. 와토 프라나고르 부셰. 샤르댕 신고 전주이와 다비드

앵그르 들라크루아

 

2. 오르세의 명화산책

1) 인상주의 이전:쿠르베, 밀레와 바르비종파, 마네

2) 인상주의 회화:모네.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시슬레, 커셋, 모리조

3) 인상주의 이후:쇠라 시냨, 크로스, 툴루즈 로트레크, 고흐, 고갱, 나비파, 상징 주와와 아르누보, 마티스와 야수주의

 

책 속의 글

어느 시대건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이 있으되 그 예술은 늘 새로운 것

혹은 반대되는 것들의 도전을 받아왔고

그 도전으로 인해 세상은 더욱 풍성해졌다.

 

미술은 정적이고 선적인 그리고 대의명분과 반듯한 이성을 축으로 하고 고전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와

동적이고 색채감이 물씬 풍기는 감정과 개인적인 변화와 심경을 토로하고 낭만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사고의

대림과 격돌보완이 서양미술사 발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