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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예술

풍속화란 무엇인가

by 까만여우 201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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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란 무엇인가

저자
이중희 지음
출판사
눈빛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풍속화 속의 풍속은 한마디로 봉건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경제적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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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화와 일본의 우키요에 그 근대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조선의 풍속화와 일본의 풍속화잉 우키요에  두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1. 조선의 풍속화

<단원풍속화첩> 25매, <혜원전신첩>30매

18세기 후반 삶의 현장을 이야기로 묶은 책이다.

 

풍속화란 인간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속화는 속인 서민들의 삶을 그린 것을 말하는데 풍속화의 한 부류로 보면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7-80년간 영조 정조 순조 3대 시기에 선행했다.

자연경관을 그린 그림을

서양에서는 풍경화라고 부르며 삶의 터전인 생활 주변의 속된 삶의 터전을 그린 것을 말하고

동양에서는 산수화라는 명칭으로 속세와 절연된 심산구곡을 그려 정신적 지향점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풍속화의 출현 배경으로는 실학의 영향, 정조와 관련되어 있으며

봉건 사회의 해체를 가져온 인간주의,

양반 사대부층의 의식 변화,

중국의로의 영향을 둘 수 있다.

 

반지배계층의 문화 판도와 반양반적이고 세속적인 서민 중심의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일반인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화폐 경제의 발전 상공업이 발전이 주요 이유가 된다.

조선의 경제 발전사를 보면

1기 조선 전반기로 현물경제의 시대

2기 18세기 전반으로 신흥 산업 자본 발생제도

3기 18세기 후반으로 화폐 경제 제도의 활황기

4기 19세기 상공업 분업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2-4기까지 부유한 상인이 상업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국제무역이 활발해지고 매뉴팩쳐(공장제 수공업)가 발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상민이 나라의 근간이 된다는 17세기 후반의 윤휴에 의해 인식 전환이 이루어진다.

또한 줄풍류라 하여 일종의 실내악단으로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등의 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악단이 발달하고 장구 젓대 간소는 반주 격으로 된다

 

김홍도 그림의 특징

사실력의 바탕에서 서양화 기법을 사용했다.

형체는 입체감을 살리고 공간표현에서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원근표현법 필치는 섬세한 세선으로 이루어졌다.

 

단원풍속화첩의 특징

-인간미 물씬 풍기는 그림

-생기 도는 역동성

-당시 첨단의서태와 유행을 담고 있다

-해학을 기본으로 한 지능형 구성으로 배경 없이 주제만 부각하고 원형구도가 자주 등장

-그 주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이 상황을 모두 끌어들여 흥미롭세 구성했다.

-사실적인 묘사 가법이 총동원되었다 (원근법, 입체표현, 세밀 묘선)

 

신윤복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상업성과 성애가 결합하였고

  대부분 상업화되고 퇴폐풍조로 도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색채를 표현의 무기로 삼았다.

  신윤복은 인물이 처한 주변환경도 중시했으며 뉴스사진처럼 사회상을 기록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퇴폐한 상층인에 대한 비판의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난숙한 도시문화의 기록이다

 

김득신 <긍재풍속화첩>

산수와 풍속을 결합한 그림으로 김홍도 양식을 계승하였다.

해학적 분위기와 정서가 가미되었다.

 

이렇게 성행했던 풍속화는 정조의 분체반정정책과 급변하는 정치구도 속에서 단절되었다

 

2.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

우키요에는 부세화라고 하는데 대부분 화려한 묵판 인쇄물로 크기가 A3(30*42|정도다.

애도시대의 에도지역에서 제작된 서민용 풍속화를 말하는데 상업적 판매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조선의 풍속화와 마찬기지로 일본도 봉건시대의 해체, 근대로의 이행기에서

 상공업의 눈부신 발전, 유흥문화의 성행으로 우키요에가 발달하게 되었다.

무사시대 말기 식고제 즉 봉급제도를 쌀로 주었으며

이를 중간에 쌀과 화폐등 필요한 물자와 교환해 주는 초린이 등장한다,

조닌은 에도 시대의 상공업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 부유계층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이는 일반서민과 무사 지배층과의 중간 계층의 특수신분이었다,

무사시대로 에도 시대에는 많은 남자 즉 무사들이 살고 있었고

이로 인해 남녀의 성비의 심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가부카와 요시와라가 성행한다.

 

가부키

스토리 없는 곡예나 요술 따위처럼 순간적이고 단순한 행위 중심의 연희다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극에 가까우며 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극적인 놀이로 이루어졌고

과장된 기교, 감각적, 주관적, 육체적 도취와 관련된 색정미, 번뇌미, 비속미를 담고 있다.

가부키의 작가들은 자유롭게 제작하지 않고 고전 스타일을 귀중히 여겼다.

선배이 형을 소중히 여기는 보존의식

에도 이전의 시대를 다루되 실제로는 에도시대의 인물이나 유행물로 환치시킴으로 옛것이 현대 대용으로 은근슬꺽 둔갑한 것에 재미를 느꼈고

당시의 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무기

새로운 작품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부키가 성행했다.

 

요미우리는 판매용 읽을거리로 호외판 속보등으로 공공화의 성격을 지닌다.

 

일본미술학파

일본에는 관학파 회화의 카노바가 있는데 이는 지배층 무사 교양과목으로 일본 전통의 아카데미를 말한다

사생파회화는 시실풍회화로 관서 교토중심으로 일어난 화파다

양품화는 서양화파와 유사하나 서양화퐈가 도입하기 전의 화풍을 말한다.

남화는 중국 남종 문인화의 변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키요에이 있는데 수도 에도 중심으로 발전한 그림이다

현세를 근심스러운 세상이란 뜻의憂世에서 순간적으로 잠시 머무는 현세의 세상이야말로 뜬구름처럼 훨훨 즐겁게 지내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다.(浮世)

 

일본의 그림은 경관 군중이 혼합된 그림에서 군중묘사, 소수여성, 단독여성으로 그림이 변화한다.

완전한 문화상품으로 번창한 에도의 토털무와 로 다양한 실용적 기능을 담당한다.

 

일본의 우키요에의 화려한 색채감 색정미 평면적인 그림은 유럽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게 된다.

근대성의 상징으로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상행했던 것과 맞물리면서

이런 그림들이 유럽에서는 과거에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인상파 화가들 고흐 고갱 등의 그림에 우키요에의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근대성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힘 꺼왔다.

영정조 시대 우리는 근대성을 이루어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지만

이후 그것이 지속되지 못하고 폐쇄적인 나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일본은 탄탄한 근대성을 이루면서 외부와의 개방성에 힘입어 다양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해 왔다.

이 당시의 우키요에 그림 그리고 서양 유럽의 그림들에서 일본의 그림들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일본은 일본만의 독자적인 그림으로 유럽인들을 사로잡았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그림이 있었다.

이것이 유럽으로 전해지지 못했던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일본의 우키요에의 발전사와 그림의 특징을 잘 알려주는 책이다

단순한 그림감상의 수준을 넘어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림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값진 책이었다.